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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On Body and Soul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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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리뷰를 쓰려고 할 때마다 바쁜 일이 생겨 글 쓰는걸 미뤄왔다.

영화의 원제는 On Body and Soul (Hungarian: Testről és lélekről)로 2017년 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이 영화는 FIPRESCI(국제 영화 비평가 연맹) 상과 기독교 비평가상도 수상하여 그 예술성과 작품성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고, 90회 오스카 시상식에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여주인공 알렉산드라 보벨리(Alexandra Borbély)는 유럽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국내에서 상영관을 찾아 보기가 많이 어려웠다. 

우선 이 영화 역시 제목의 번역에 많은 무리가 있었다고 본다. 제목이 영화가 추구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영혼과 몸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에 따른 고통과 환희의 과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아름답고 적막하기까지한 영상으로 표현해내 보는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조용하고 심도 있으면서 느리지만도 않은 영상미가 입체적 음향을 자랑하는 영화들을 무색하게 만들며 가슴에 파고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위 예고편만 보아도 당시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데, 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은 헝가리의 여성 감독인 일디코 예네디(Ildikó Enyedi)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일디코 감독은 1955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64세이다. 1989년 나의 20세기(Az én XX. századom, My 20th Century)라는 영화로 같은 해 깐느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총 9편의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나이나 경력에 비해서는 작품 수가 적은 편인데, 아마도 모든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도맡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을 구상하여 각본을 쓰고 직접 감독까지 하므로 작품 하나 당 소요되는 시간이 긴 것인데, 그만큼 작품이 탄탄하고 헛된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대사가 아닌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영화의 배경은 소를 도축하여 고기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남자 주인공인 안드레(Endre)는 이 회사의 CFO로 한쪽 팔에 약간의 장애가 있다. 영화 내내 사장이 나오지는 않았고 안드레가 회사의 주요 사항들을 직원들과 결정했다. 여자 주인공 마리아(Mária)는 이 회사에 고기의 등급을 정하는 품질평가사로 부임한다. 영화는 첫 씬에서 이 회사에서 소가 도축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의 목을 기계로 잘라 기계를 통해 사지가 분리되어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로 생산되는 과정 전부를 말이다. 첫 장면부터 관객들은 끔찍한 감정을 느끼는데, 나는 이 첫 장면이 나중에 마리아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과 겹쳐지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현실화되지 못했을때 결국 육체의 고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감독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부임하자마자 고기의 등급을 매우 엄격하게 매겨 다른 직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결국 안드레와는 이 일로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이때 마리아는 다른 직원들이 볼 때 충분히 최고 등급인 고기에 왜 등급을 낮춰 매기는지 묻는 질문에 나에게는 그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고 대답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고 그 이후 상당한 시간 동안 관객들은 마리아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마리아가 심리 상담을 받는 장면과 안드레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한 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하는 수학 천재이며 유아기부터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서야 왜 마리아가 감정 표현이 서툴고 표정이 항상 없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설정은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벽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안드레 역시 사랑에 서툰 면이 있는 사람이다. 육체적 여친이 있긴 하지만 소울메이트와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일에 철저하고 현명하지만 고독한 싱글 라이프를 살아가는 그런 캐릭터이다.



이러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감독은 꿈을 등장시킨다. 두 주인공은 각자 꿈을 꾸는데, 꿈에서 그들은 각자 사슴이 되어 각각 암컷, 수컷 사슴과 꿈을 꿀 때마다 가까워진다. 처음엔 먼발치에서 서로 바라보는 꿈, 두 번째엔 가까이 접근하는 꿈, 세 번째는 같이 풀을 뜯어먹는 꿈..이런 식으로 두 마리의 사슴은 서로의 거리를 서서히 좁혀 간다. 이 꿈이라는 매개체 역시 감독은 두 주인공이 각자의 꿈을 꾸는 것으로 설정하여, 나중에야 둘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런 영적인 교감을 처음 느낀 두 사람은 서로 지난 밤 꾼 꿈을 다음날 적어서 교환하고 정말 같은 꿈이었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감정의 벽을 허물어간다.



그러나 자폐증을 갖고 있는 마리아는 그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못하고, 결여된 사회성을 드러내며 안드레를 당황하게 한다. 회사 식당에서 직원과 식사 중인 안드레에게 다가와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대사를 날리는 식이다. 안드레는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관객과 똑같이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영적으로 강하게 교감하지만 같은 방에서 밤을 같이 지내도 카드 게임을 하는 등 그녀와 가까워지기 어려운 장벽을 느낀 것이다. 표정이 없는 마리아는 그런 상황들에 당황은 하지만 해결책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장벽은 좁혀지지 않는다. 어릴때부터 다닌 심리 상담사에게 털어놓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도 명확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 그녀가 일반 사람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며, 그 상담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안드레는 그녀와 교제하는 것을 중단하자고 선언하고, 마리아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녀는 속으로는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많은 작품성 있는 영화가 그러하듯 소리치거나 슬피 울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 감정의 변화를 주인공은 캐릭터에 맞는 미묘한 표정과 눈빛의 변화로 잘 표현해 낸다. 하지만 일상적인 샤워를 할 것처럼 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욕실 유리를 깨고 물을 받은 후 그 깨진 유리로 손목을 긋는다. 감독은 영상으로 손목에서 피가 솟아나는 장면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영혼과 육체에 일어나는 사랑의 극단적인 면을 나타낸다. 나도 이 장면에서 숨을 죽이고 저렇게 가면 안되는데 하는 감정에 몰입되었다.


하지만 그때 친구가 하나도 없어 절대 울리지 않는 그녀의 전화가 울리고 (사실 전화도 없었는데 안드레와 연락하기 위해 새로 구입한 것이다) 그녀는 손목에 응급처치를 하며 전화를 받는다. 안드레는 무뚝뚝하게 만나자고 하고 그녀는 잠시 볼 일이 있다고 말한 후 바로 병원을 찾아 붕대를 감고 그를 만나러 나간다. 이 장면들은 그녀가 뛸 듯이 기뻐하지도 BGM으로 발랄한 음악이 나오지도 않고 조용히 흘러가지만 거기에서 벅차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국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고, 이제 두 사람의 꿈에서 사슴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한겨울 영화 한 편으로 사랑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이 영화는 아름답고 뛰어난 수작이었다. 마음의 벽, 사람과의 거리는 인간이 갖고 있는 영적인 교감조차도 뛰어넘지 못하게 하였고, 그 벽을 뛰어 넘은 결과는 결국 현실이며 육체적인 관계였다는 설정은 감독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치밀한 플롯 설정이 없었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소와 사슴이라는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육체와 영적인 존재감을 동물을 통해 그려낸 것도 대단하다. 그리고 배우들은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잘 표현해 냈다. 특히 여주인공 알렉산드라는 평소 갖고 있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연기를 훌륭하게 펼친 것 같다. 영상은 시적이며 아름다웠고, 간간이 나오는 음악도 좋았다. 사랑에 대한 영화로 나에게는 오래 기억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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