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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하늘을 나는 타이어(空飛ぶタイ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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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한동안 의아해하다 딱히 볼 게 없고 평점이 괜찮은데다 찾아 보니 한자와 나오키, 우리마을 로켓 등의 원작자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池井戸)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어서 보게 되었던 영화. 바로 하늘을 나는 타이어(空飛ぶタイヤ)다. 

이케이도 준은 전업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일본 상업 드라마와 영화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도서관에서 미스테리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에도가와 란뽀상(江戸川乱歩賞) 수상작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고 한다. 에도가와 란뽀상은 일본추리작가협회가 탐정소설 육성을 위해 제정한 상으로, 1954년부터 에도가와 란뽀의 기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이런 소설들을 읽으며 언젠가 자신도 추리, 미스테리 분야의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이케이도 준은 1988년 일본 굴지의 미쓰비시 은행에 실제로 입사한 전력을 갖고 있다. 1995년 32세의 나이로 퇴직할 때까지 7년 정도 실제 은행원으로 일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한자와 나오키를 쓸 때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한다. 그는 퇴사 후 컨설팅 업무를 하며 비지니스 관련 서적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수입도 적고 재미도 없는데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껴 본격적으로 꿈이었던 에도가와 란뽀상을 노리게 된다.

그는 1998년 하츠루 소코하키(果つる底なき)라는 작품으로 44회 에도가와 란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한다. 추리, 서스펜스 분야의 작가로 집필을 시작한지 고작 2년여 만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대형 출판사 중 하나인 고단샤(講談社)에 의해 단행본으로 출판된 후 2000년 후지티비계에서 드라마화되었다. 이 작품 역시 은행이 배경인데, 마침 이 작품이 발간된 1998년 일본에서는 장기신용은행이 파산하고 불량채권이 문제되는 등 은행권이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을 때였다. 

첫 작품의 대성공 이후 그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고, 2010년 철의 뼈(鉄の骨)로 제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吉川英治文学新人賞)을, 2011년엔 우리마을 로켓(下町ロケット)으로 145회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한다. 이렇게 연이어 큰 문학상을 휩쓸면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인기 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 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대기업의 횡포와 부정에 의해 희생되는 중소기업과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을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本木克英)이 영화화했는데, 이 감독은 1963년생으로 1993년부터 게게게 기타로 시리즈(ゲゲゲの鬼太郎) 등 영화 19편, 드라마 7편을 제작한 베테랑이다. 2014년 초고속! 참근교대(超高速!参勤交代)라는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다분히 매우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원작과 대본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이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원작의 무게감 때문인지 감독의 이전 스타일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는 마치 소설을 그대로 따라가듯 시종일관 긴박하게 흘러간다. 헛되이 흘러가는 씬을 넣지 않겠다는 감독의 집념을 보여주듯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어려움과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쩌면 감독이 이 원작을 살리기 위해 많은 감각을 동원하고 연구를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점에도 긴장감이 풀어지지 않고 전개가 빨라 좋았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영화의 내용은 원래 사업가 기질이 별로 없는, 즉 정직하고 우직하며 양심적인 주인공이 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운송회사를 경영하면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성실하고 직원들을 아끼는 사람으로 초등학생 아들 한 명과 예쁜 아내를 두고 있다. 이 아내 역으로 후카다 쿄코(深田恭子)가 등장하는데, 잡지사에 근무하는 여자 작가를 제외하면 거의 홍일점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아저씨라는게 이 영화의 함정이다. 사실 작가가 원체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여주가 18세기식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아무런 상관 없는 인물들로 그려져서 인기가 더 많을 것이다.

영화는 어느 화창한 날 주인공이 운영하는 회사 소속의 차에서 바퀴가 통째로 빠져 날아가 길을 가던 모자를 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를 데리고 가던 엄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안그래도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었던 회사는 이 사고로 인해 유가족은 물론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그 원인 또한 아무런 증거 없이 여론몰이에 의해 회사의 정비 불량으로 정해져 간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은 주인공을 돈 밖에 모르고 직원들만 갈구는 사장 취급하고, 경찰은 주인공을 가해자 취급하며 범죄인으로 몰아가고, 주거래 은행은 대출을 중단해 버린다. 


주인공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직원을 믿었던 그는 정비 담당 직원을 해고하지만 그 직원이 성실히 일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당일도 정확하게 정비했던 기록을 보고 그를 다시 복직시킨다. 이 직원은 결국 끝까지 사장을 믿는다. 은행이란 은행은 다 돌아다니며 운전자금 대출을 부탁하고, 사고의 원인을 혼자 조사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는 정비가 확실했으므로 차체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며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차량 제조회사에도 끈질기게 연락하여 결함이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대기업은 차량 결함이 아닌 정비 불량으로 인한 사고였다는 보고서를 경찰에 제출하고, 경찰은 보란 듯이 사장을 나무란다. 하지만 정비 직원으로부터 확실히 정비 불량이 아니었다는 자료를 입수한 주인공은 해당 회사의 차량 중 유사한 사고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잡지사 기자가 특정 회사 차량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르포 기사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기사를 게재하고자 하지만, 대기업이 광고비로 잡지사에 압력을 가해 기사 게재는 무산된다.


유사한 사고를 겪은 운송회사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싸울 방법도 알지 못하고 싸우려는 의지도 없다. 그냥 피해를 감수하고 적절히 마무리해야 생업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기자가 건네준 유사 사고 리스트에 있는 회사를 수소문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장인정신으로 정비를 해 온 한 엔지니어를 만나게 된다. 그는 차체 결함이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주인공에게 건네주며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회사에 다니기 위해 회사의 강요로 할 수 없이 고발을 하지 못했지만 이 자료로 반드시 승리해 달라고 주인공에게 부탁한다.


한편 대기업 본사 내부에서는 주인공의 의지를 지켜보며 회사의 비리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물이 회사 내부 정보를 캐기 시작한다. 그는 몇 명의 동료를 규합, 해당 사고가 차량 결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내부 자료를 입수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는 한직으로 전출되고 자신도 인사팀으로부터 제일 잘 나가는 부서로 옮겨 꿈을 펼쳐보라는 회유를 받는다. 그 대가는 이번 사고를 잘 수습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주인공을 불러 상당한 액수의 돈을 줄 테니 이 사건을 넘어가자고 부탁하고, 주인공은 큰 갈등에 빠진다. 그 돈을 받으면 자금난이 바로 해결되고, 회사는 순탄하게 굴러갈 수 있다. 아버지 대부터 회사를 지켜온 임원도 그 돈을 받고 끝내자고 설득한다. 하루 종일 사건 해결을 위해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들은 학교에서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놀림 받고 그런 아이들과 싸우며 괴로워하고 있다. 아내는 현명하게 남편을 대하며 힘을 북돋지만 주인공의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그 돈을 받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선언하고, 회사는 유가족으로부터의 피해보상 소송, 은행의 차입금 강제 집행까지 겹치며 큰 위기를 맞는다. 대기업 내부 직원도 팀을 옮기자마자 상사의 의도적인 갑질과 왕따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대기업과 싸운다. 결국 대기업 직원은 회사 내부의 결정적 증거를 입수해 주인공에게 넘겨주고, 주인공은 그 증거와 엔지니어가 준 자료를 경찰에게 제시하며 결국 사건은 급반전된다. 다행히 경찰은 대기업에 매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 내부에서 사장의 지시로 사건 감추기를 지휘한 임원이 구속되고, 양심적인 은행원이 있는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허락하며 회사는 기사회생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해온 필자로서는 진짜 남일 같지 않은 영화였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힘있는 자들의 폭력과 이기심, 그들의 욕망을 이 영화는 잘 그리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확률은 일본보다도 한국이 훨씬 낮을 것이다. 한국은 공권력이 싼 값에 매수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만연되어 누구나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힘 없는 자들을 약탈한다. 한국은 경제 수준에 비해 부패 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중소기업 사장과 대기업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조연은 결국 승리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는 별 이익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숨진 여성의 사망 현장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뜻이 통하지만 자주 만나서는 안되는 관계임을 눈빛으로 확인하고 미래를 기약한다.


잡지 기자는 조연에게 그렇게 싸우는 방법도 있구나 하며 감탄하지만, 조연은 끝까지 자신이 그 일을 했다고 직접 시인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저돌적으로 현실에 부딪혀 나가고, 큰 조직 내의 조연은 자기 나름대로의 싸움법과 지략으로 이 위기를 돌파한 것이다. 대기업 안에서 그 조연이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작가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원작을 잘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나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을으로서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특히 대기업이 공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원작과 영화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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