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74년 문세광 사건] 문세광 네번째 총알에 육영수 여사 피격, 중앙일보, 2005.01.20 18:03,
https://www.joongang.co.kr/article/439534
영화 <암살자들>이 다룬 1974년 문세광 저격 사건. 영화 속 서사는 극적이지만,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핵심적 의혹들이 존재한다. 팩트체크 2번째로 2005년 연합뉴스발 기사를 가져왔다. 이 기사도 20년 전에 작성된 것이지만 5대 의혹이 잘 정리되어 있어 정리 및 게재한다.
당시 수사당국은 사건 발생 128일 만에 속전속결로 문세광의 사형을 집행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 감식반 증언과 한일 양국의 수사 기록을 비교해 보면 영화 속 연출과 실제 팩트 사이에 5가지 커다란 균열이 존재한다.
문세광 사건 5대 핵심 의혹
육영수 여사는 누구의 총에 맞았는가? 사형 판결문과 달리 당시 수사본부 감식계장은 "문세광이 쏜 총탄 중 육 여사를 맞춘 것은 없었다"며 탄흔 추정이 달랐음을 증언했다. 현장에서 울린 7발의 총성 중 문세광 외 '제3자'가 발사한 총탄의 행방도 여전히 묘연하다. 즉 결정적 증거인 "탄알"이 없다. 이건 너무나 이상하다. 당시 독재정권 산하의, 청와대 경호실이 경호하던 폐쇄된 공간에서 일반인도 아니고 영부인이 살해당했는데 탄피나 탄두가 없어진다고?
'제3의 저격수' 논란과 경호원들의 이상 행동 행사장 좌측에서 달려나오며 총을 쏜 문세광의 동선과 달리 육 여사의 머리는 우측으로 기울어졌다. 저격 직후 단상으로 올라간 인물이 여사를 보호하지 않고 뒤로 숨는 등 이해하기 힘든 정황도 포착되었다.
어이없이 뚫린 청와대 경호망과 비표 없는 입장에 관한 의혹 최고 수준의 경호가 펼쳐진 행사장이었으나, 문세광이 탄 고급 전세 차량은 검문 없이 통과되었다. 사람도 아니고 차가 어떻게...? 그냥 일반행사에서도 사전 허가되지 않은 차량이 지정된 동선으로 들어가는건 불가능하다. 행사 전날 경호 완화 지시가 내려졌다는 점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허점이 존재한다.
180도 달랐던 한국과 일본의 수사 발표 한국 측은 조총련 간부의 직접 지시, 만경봉호 승선 지령, 병원 비밀 훈련 등을 발표했으나, 일본 측은 "법적 증거 없음", "승선 명부에 이름 없음", "7인실 일반 병실이라 비밀 훈련 불가능"이라며 한국 측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 정국과의 외교적 타임라인 1973년 DJ 납치 사건으로 국제 사회와 일본으로부터 극심한 외교적 압박을 받던 박정희 정권이, 이 저격 사건 하나로 대일 정국을 반전시켰다는 정치적 연계 의혹이다.
이런 의혹들을 살펴보면 분명히 이 사건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소재를 잘 잡은 것 같다. 심지어 재밌다고도 하니 나도 이 영화가 보고싶어졌다.
[기사 원문] 문세광 저격사건 5대 의혹
저격사건 발생이후 문세광씨는 1∼3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사건 발생 128일만인 1974년 12월20일 서울구치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발사된 총탄이 모두 몇발이냐에서 부터 시작된 논란은 핵심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혹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 육영수 여사, 과연 문씨 총에 맞았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의혹은 육영수 여사가 과연 세간에 알려진 대로 문씨가 쏜 총에 맞았느냐 여붑니다.
당시 수사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현장에서 울린 총성은 모두 7발. 문씨는 5발이 장착되는 스미스 웨슨(일명 리볼버) 권총을 사용했고 범행 뒤 한 발이 권총 약실에 남아있어 모두 4발을 발사한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대법원의 문씨에 대한 사형 판결문도 문씨가 발사한 1탄은 오발(자신의 허벅 지), 2탄은 연단, 3탄은 불발, 4탄은 육 여사, 5탄은 태극기에 맞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불발탄이 권총 약실에 남아있었고, 따라서 총성이 안울렸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사본부 요원이었던 고(故) 이건우 당시 서울경찰청 감식계장은 사건발생 15년이 흐른 지난 89년 월간『다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뒤집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는 현장검증 전 이미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갔다며 탄흔에 기초해 제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비교해 보면 일치하지 않는 한 발을 두고 수사발표에서는 육 여사를, 이계장은 천장을 맞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극장을 크게 울렸던 7번의 총성 중 문씨에 의한 것이 아닌 나머지 3발을 과연 누가 어디에서 쐈느냐가 완전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경호원이 쏜 총탄이 합창단원 장봉화양을 맞췄지만 나머지 두 발의 `행적'이 묘연한 것입니다.
당시 탄착지점은 오발로 인한 문씨 자신의 허벅지, 육 여사, 합창 단원장양, 연단, 태극기, 천장 등 모두 6군데였습니다.
수사발표에서의 7번의 총성과는 다르지만 불발탄을 계산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수사발표대로라면 경호원이 쏜 총탄 중 2발은 천장과 장양을, 이 계장의 주장대로라면 `제3자'의 총탄 중 2발은 장양과 육 여사를 향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 제3의 저격수 있었나
육 여사는 관객석에서 바라봤을 때 연단의 우측에 앉아 있었습니다.
문씨가 행사장 좌측 뒷자석에서 앞으로 뛰어가며 총탄을 발사 했기 때문에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 여사의 머리는 좌측으로 기울어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저격 뒤 육 여사의 머리는 우측으로 넘어와 있었습니다.
`제3의 저격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입니다.
또 문씨의 저격 뒤 무대 왼쪽에서 한 명이 단상위 육 여사 쪽으로 뛰어올라가 여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뒤로 숨는 듯한 모습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시에 경호원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한 명이 앞서 올라간 사람 뒤에서 권총을 겨냥하고 있었는데 총구가 육 여사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출입비표 없이 대통령 행사장에 들어갔다?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대통령행사장에 출입비표도 없이 들어갈 수 있을까. 문씨는 행사 당일 포드20M이라는 고급리무진 한 대를 전세내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행사장에는 수많은 경찰이 배치됐고, `승차입장'이라는 비표가 없는 차량은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행사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검문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 문씨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안으로 들어갈 때 역시 검문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경호과장이 검문완화 지시를 전날 내렸고 극장 로비에서 문씨가 청와대경호계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권총까지 소지하고 있던 문씨가 비표도 없이 차량을 행사장에 진입시키고 극장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의혹을 남기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입니다.
문씨가 김포공항으로 입국할 때 트랜지스터 라디오 케이스에 숨겨온 권총이 적발되지 않았고 일본인 명의의 위조여권을 사용했는데도 재일동포 비자를 받아 입국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의혹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너무나도 다른 한일 수사결과 발표
사건발생 직후 문씨가 일본인 가짜 여권을 이용해 입국한 재일교포라는 점 등으로 일본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다른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측은 남편 명의의 가짜여권을 문씨에게 만들어 준 요시이 미키코(吉井美 喜子)라는 일본 여성을 공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측은 그녀를 여권관리법 위반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했습니다.
문씨의 배후와 관련, 한국측은 조총련 정치부장인 김호룡씨 등 수명을 거론했지만 일본측은 뚜렷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측은 문씨가 74년 5월5일 오사카항에 정박 중이던 `북괴' 공작선이자 무역선인 만경봉호에 승선, 공작원으로부터 박 대통령 암살 지령을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일본측은 참의원 법무위 정부답변에서 승선명부에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문씨가 입국 직전 일본 아카후도(赤不動) 병원에 가명으로 위장 입원해 한달간 `특별훈련'을 받았다고 한국측은 발표했지만 일본측은 병실이 7인실이기 때문에 특별한 학습이나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있나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김대중씨 납치사건과 연계지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1년전인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언론은 중앙정보부 관련설을 제기했고 일본정부도 일본 주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한국정부를 강력 비난했습니다.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특사로 일본을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면서 박정희 정권이 상당한 압력을 받던 시기에 바로 저격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일본은 자민당 부총재가 수상의 친서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는 등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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