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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인간 인식체계의 생물학적 기원 (1) 침팬지가 인간보다 100배 우월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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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대 마츠자와 테츠로(松沢哲郎) 교수는 인류학 연구의 선두에 서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특히 영장류 연구와 동물심리학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최근 자신의 오랜 연구 파트너인 아이(Ai, アイ, 1976년생)와 그녀의 아들 아유무(アユム, 2000년생)를 통해 얻은 실험결과를 다시 한 번 발표했다. 오늘은 2013년 TED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먼저 소개한다.



마츠자와 교수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연구 목적과 결과가 명확하게 나와 있어 먼저 이것을 소개한다.


인간 마음의 진화적 기원을 밝히기 위해 침팬지를 대상으로 야외연구와 실험연구를 실행했다. 실험연구에서는 그들의 수와 언어능력의 맹아를 실증하였고, 초단기기억의 존재를 밝혀냈다. 


1000만년 전 영장류 공통의 조상에서 인류가 분화되어 나온 후 침팬지, 오랑우탄과 인간은 각자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 왔다. 영장류는 97% 이상의 DNA가 일치하며 이 3%의 DNA적 차이가 지금의 영장류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류학자로서 궁극의 질문 중 하나인 인간의 마음의 생물학적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츠자와 교수는 침팬지의 인식체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택했다. 침팬지와 인간이 약 1000만년 전에 공통의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었으므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인류 조상의 인식체계를 그 원시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침팬지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2013년 TED에서 공개한 그의 발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츠자와 교수는 침팬지에게 숫자를 가르치고, 침팬지가 숫자를 실제로 인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터치스크린에 무작위 위치로 숫자가 뜨게 하고 1을 누르면 다른 숫자들이 가려지게 해서 침팬지가 2~9까지의 숫자를 순서대로 누를 수 있는지 실험했다. 침팬지의 기억력은 놀라웠다. 아주 짧은 시간 숫자가 뜨게 해도 침팬지는 순서대로 숫자를 찍어 냈다. 교토대는 일본에서 동경대 다음으로 평가받는 No.2 대학으로 일본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교토대 학생들은 침팬지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보여준 화면에서는 아예 한 번도 순서대로 숫자를 누르지 못했다. 침팬지의 단기기억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숫자 뿐만이 아니다. 침팬지는 한자로 표시된 색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글자가 뜻하는 색을 터치했다. 한자라는 어려운 문자를 인식할 수 있는 인식력도 지닌 것이다.



마츠자와 교수가 아프리카 현지에서 관찰 중인 침팬지 집단은 특이하게 돌로 땅콩을 깨어 먹는다. 마츠자와 교수는 이들이 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어떻게 학습하는지 지켜봤다. 3년 반 된 어린 침팬지는 처음으로 돌을 사용하다 잘 안되자, 주변의 수컷 어른 침팬지가 하는 모습을 아주 유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이 어린 침팬지는 그 뛰어난 기억력으로 돌을 잡는 방법과 내리치는 각도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바짝 붙어서 관찰한 후 이를 흉내내려고 했다. 이런 관찰을 통해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의 뛰어난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확인된 것이다.



이 TED 강연에서 마츠자와 교수는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를 상상력(Imagination)의 유무로 정리했다. 침팬지는 현재만을 살고, 현재를 살기 위한 능력을 뛰어난 기억력을 동원하여 학습한다. 그래서 침팬지는 걱정도, 희망도 갖지 않는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인식하고, 미래를 불안해 하면서도 희망도 갖는다. 그러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시간의 인식을 마츠자와 교수는 상상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희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인지론적 능력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은 약 2~3만년 전 벽화에 나오는 구석기인들의 심볼들이다. 침팬지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한자와 숫자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간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한다. 글자가 나타내는 색깔과 숫자가 나타내는 크고 작음, 순서의 개념까지 인식하는 것이다. 이 강연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마츠자와 교수는 현상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기억력, 즉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 능력은 침팬지가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는 인간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만 갖고 있는 기억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인간 중에서 가장 좋은 기억력을 가진 사람도 침팬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TED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UyX5kezb0


이런 실증들을 바탕으로 마츠자와 교수는 인지적 거래 가설(cognitive tradeoff hypothesis)을 주장한다. 진화론적,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공통의 조상을 가진 현생인류와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는 두뇌의 역할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시켰다. 침팬지 등은 나무 위라는 비교적 맹수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살았으므로 적이 어디서 오는지 먹이는 어디에 많은지 등 현재 내 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한편 나무 아래로 내려와 두 발로 걷게 된 현생인류는 맹수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단생활을 하며 역할분담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위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생 인류는 기억력을 일부 포기하고(팔고) 언어능력을 발달(사는)시키는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많은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어떤 학자는 아프리카의 초식동물처럼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것이 포식자로부터 개체를 보호하고 먹이가 많은 지역을 차지하는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인류도 이처럼 1:1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포식자와 자연환경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군집생활이 필요했고 특히 학습된 개체가 성인이 될수록 생존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늘려 학습에 최적화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인류의 친척들은 빨리 성인이 되어 힘을 쓰기엔 좋았지만 현생인류는 유아기를 대폭 늘리는 대신 육아를 여성들이 집단으로 담당하고(지금도 육아는 엄마와 할머니, 아줌마 등 여성집단이 담당한다) 사냥과 외적 퇴치를 남성집단이 담당하여 유아들을 보호하며 교육하여 집단지성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수많은 현생인류의 친척들이 도태하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비결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몸에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2~3%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가까운 종이었던(즉 교배가 가능했던) 그들 대신 현생인류만이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마츠자와 교수의 인지적 거래 가설 역시 이러한 정설을 실험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보며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들도 인간과 거의 같은 사고와 꿈을 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통의 조상을 가진 영장류답게 침팬지, 오랑우탄, 보노보 등은 뛰어난 두뇌와 사고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가 똑똑해서 5~6세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고, 사물을 흑백으로 인식하지만 꿈도 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장류도 포유류에 포함되고, 포유류는 육지로 올라온 파충류, 양서류에서 진화하며 점차적으로 두뇌를 발달시켰다. 그렇다면 포유류는 어느 정도의 인식력을 갖고 있을까? 이 질문에 마츠자와 교수는 실험으로 답한다. 다음 글에서는 마츠자와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참고로, 마츠자와 교수의 홈페이지와 아이 프로젝트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https://www.matsuzawa.kyoto/cv/ja/index.html

https://langint.pri.kyoto-u.ac.j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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