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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대한민국, 마녀사냥 공화국인가 - 조국 사퇴와 설리의 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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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향해 분노심을 촉발시키는 정파적 사고방식과 도덕적 선민사상은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다. 조선의 지배층은 이를 이용해 오래도록 권력을 유지했고, 정적을 제거할때면 항상 도덕적 기준을 문제 삼았다. 당연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와 분노를 희생양 한 마리를 골라 그 사람에게 쏟아 붓게 하고, 마치 그 자가 조선의 악의 축인 양 모든 비리의 근원으로 생각하게 하여 사회의 공적으로 만들었다. 언론으로 먼저 죽이고 이후 그를 명분 삼아 왕을 다그쳐 사약을 내리게 한 것이다.


오늘 조국의 사퇴를 보면서 씁쓸한 이유가 중세에서 끝났어야할 마녀사냥이 아직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어서이다. 조선시대부터 사회의 썩은 곳을 도려내겠다고 누군가 나서면 항상 이런식으로 언론으로 죽이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후 나중에는 사약으로 죽였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딱 하나 변한 것은 사약이 없어졌다는 것 뿐이다. 조국과 그의 가족은 이미 난도질을 당했고, 정의로운 척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같은 날 25세의 젊은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다. 굳이 잘못이라 한다면 조선이라는 편협하고 이상한 사회에 태어난 것 하나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잘못이라곤 남을 몰아세우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그로 인해 남이 괴롭워하며 떨어지는걸 즐기는 곳에 태어난 일인 것이다. 너는 도덕적으로 나쁜 년, 나쁜 놈이야 라는 말을, 조선인들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지독하게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지지도, 사회적으로 보호해 주지도, 그렇게 사람을 몰아가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동방예의지국이며 대국의 대문화를 받아들여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이상한 감정상태로 살아 간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맞지 않으면 갖은 욕설과 분노를 퍼붓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도덕적 우월성을 한껏 고양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그 성리학을 기독교로 대체하면 딱 들어맞는다. 변한 것은 없다.



조선인들은 그렇게 살아 왔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존엄한 것인지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되면 맞추는 사람이 99%겠지만, 실제로 그런 추상적인 도덕적 가치관 외에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모습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나이가 많아서, 선배여서, 높은 사람이라서, 가진 자여서, 갑이라서, 그런 식으로 존중을 강요하는 문화는 넘쳐 흐르지만 정작 약자에 대한 배려는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획일적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몰아세우는데 능해서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런 이상한 사회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떤 곳에서는 중세에 이미 다 끝난 심리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에 태어난 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이상한 사회에서 자신의 인격도, 사회적 다양성도, 포용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고독한 삶을 살다 떠났다. 누구인지도 모를 익명으로 달린 악플에 괴로워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말고 다른 일로 열심히 살아가려던 한 젊은이를 이런식으로 희생시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류층들이 SKY대를 장악해가고 있는 현실에서, 연예인이면 어떻고 또 다른 일이면 어떠한가. 그녀도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누구에게도 비난 받지 말아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대중의 인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고, 설사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고 우겨도 한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사회여서도 안되는 것이다. 중세시대 교황이나 성직자의 말 한 마디가 그런 파급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21세기이고 그녀는 그냥 동시대를 사는 젊은 여성일 뿐이었다. 그런 젊은이 한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예민하게 들고 일어나 갖은 욕설과 인격모독을 일삼으면 이 나라에서 누가 버텨 내겠는가.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아니면 유교적 가치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을 비웃으며 또다시 손가락질 할것인가? 기독교건 뭐건 간에 그런 종교를 떠나서, 그녀는 그녀의 존재 만으로도 최소한의 인격을 보장 받아야만 했다. 그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권리와 존엄성에 관한 일이다. 그것이 프랑스 혁명의 기치였던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아니었던가? 인간의 인격이라는 것은 국가나 정파나 종파에 종속된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에 대해 권리와 의무를, 국가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에게 권리와 의미를 지는 계약관계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몇 번 실수하고 나와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손가락질하고 욕설과 지적질을 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하고 때론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나라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 아래로부터도, 위로부터도 개혁한 적이 없고, 단지 강대국이 하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다수결, 투표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는 조선으로 말하자면 평민의 난이 성공하여 이룩된 다수를 위한, 다수의 존엄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조선은 소수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이 어떻게 한국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모델을 심었는지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aorigin/57

https://brunch.co.kr/@aorigin/58



대한민국이 자살율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인 것은 제도적 문제와 문화적 문제를 둘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도, 빈곤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집값과 물가는 천정부지로 비싸며 수출 제조업 중심이라 다가오는 세계적 인구감소와 공급과잉, 무역분쟁 시대에 한국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건 한국의 후진 정파적 사고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이다. 문화적으로도 관용과 배려, 사회적 포용력이 없는 사회이다. 사회 다수인 평민들 대부분이 경제적, 인격적으로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0월 14일 대한민국의 작은 개혁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한 사람은 가족과 함께 만신창이가 되어 자리를 물러났고, 그저 아무 죄 없는 젊은 연예인이었던 한 사람은 아예 세상을 떠나 버렸다. 여론과 대중의 뭇매를 맞으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들이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가? 설리의 가족은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말만 많고 소리만 지르며 아무런 행동이 없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그들의 희생을 통해 뭐 하나라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누가 나서서 웅변을 하고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며 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수를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은 그래서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하겠다는 것인가가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대한민국 희망의 불씨는 미약하다. 스스로 진화한 지식인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도, 다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행동가가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스럽기만 하다. 도덕이라는 중세적 갈라치기 무기 뒤에 숨어 대중들의 싸움을 즐기고 있는 대한민국 앙시엥 레짐만이 오늘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 갈라치기에 춤추는 꼭두각시같은 대한민국 대중은 내일도 또다른 신박한 마녀사냥 건수를 찾아 헤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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