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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3,500년 전 인류 최초의 석탄 사용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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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제부터 석탄을 사용했을까? 예로부터 서역이라 불려왔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3,500년 전 인류 최초의 석탄 사용 흔적이 발견되었다.


신장자치구 지렌 타이고우커우 유적에서 인류가 최초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기존의 최고 유적이었던 중국의 푸샨 광산보다 500년을 앞선 것이다. 푸샨 광산 유적이 구리 제련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가정용 연료로 사용되었다는 면에서 획기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신장자치구 지역은 예로부터 나무 연료가 귀해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중국 북서부 지역이 인류 최초의 석탄 사용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로마가 영국을 지배했던 AD 100~200년 경 석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출처 : Daily Mail, http://www.dailymail.co.uk/news/peoplesdaily/article-3202104/Remarkable-discovery-shows-humans-burning-coal-fuel-3-500-years-ago-world-s-earliest-site-activity-unearthed-China.html


신장 고고학 및 유적문화 연구원 루안치우롱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6,000~7,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탄소결정을 보석으로 사용한 것이 최초의 석탄 사용이었다고 한다. 한나라 시대에 석탄을 산업과 일상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렌 타이고우커우 유적은 양면이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고 북쪽에 카시강, 서쪽에 협곡 입구가 있어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에는 14채의 집터가 남아있으며 현재까지 2,000 sqm 이상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살림, 채집, 생산 등 구분된 역할을 한 가구들이 모인 부족집단의 터전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대규모 유적지여서 상당한 연구성과가 기대된다.



* 출처 : People's Daily, http://en.people.cn/n3/2016/1102/c90000-9136099.html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먼 옛날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목민족의 터전이었다. 서역의 일부로 실크로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관자에 의하면 BC 645년 설립된 월씨국은 타림 분지에서 옥을 생산해 주 교역원으로 삼았다.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유명한 옥의 산지로, 상(商)의 푸하오 무덤에서 발굴된 750종 이상의 옥기의 산지가 바로 지금의 신장자치구인 코탄 지역이었다. 옥기는 홍산문화, 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며, 고귀한 신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그 변하지 않는 성질로 인해 제기로도 사용되었다.

사카족 등 많은 민족이 거쳐간 이후, 한 제국시대로 들어서며 흉노의 터전이 되었다. 5호16국 시대에도 북방계통 왕조가 성쇠했고 6세기 돌궐제국의 일부가 된다. 당 때에는 고구려유민 고선지의 활약으로 안서대도호부 소속이 되었다. 이후 토번, 고창 등을 거쳐 몽고제국이 지배했고, 몽고 일파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청이 복속하였다. 현재 47개 소수민족 1,100만여명이 거주하며, 45% 정도가 위구르족이다. 

강대했던 청의 영토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금의 중국은, 중국 영토 내의 역사는 모두 중국(한족)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장기프로젝트로 진행중이다.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들은 고대로부터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바탕으로 ‘대(大) 중화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중국의 국가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고구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 동이족의 시원도 황제이며, 고조선, 고구려를 포함한 모든 중국 내 민족의 시원이 황제, 즉 화하족, 한족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왜곡에 중국은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신장위구르에 대해서도 역사 왜곡과 민족 탄압이 동시에 행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하상주단대공정→동북공정(서북공정 등 전 지역 포함)→중화문명탐원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공정은 우리 뿐 아니라 중국 내 소수민족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 사대주의, 친일, 친중, 친미에 젖은 역사학자들이 한국의 주요 대학과 정부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우리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추후 동북아역사재단이 미 의회에 보낸 독도도 없고 삼국시대 시작을 4세기로 규정하고 모든 지명이 중국어로 되어 있는 사대주의 지도 등에 대해 기술할 예정이다. 하루빨리 역사주권을 찾아야만 한다.

자존심과 자립심이 강한 위구르족 등은 중국 정부에 끈질기게 저항 중이다. 이런 독립정신이 강한 민족들과 민간 차원의 유대와 공동연구가 하나의 작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역사적 정체성과 자주성을 갖춰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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