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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엘르 리뷰 - 현실적 무표정연기의 끝판왕이 보여주는 인간의 관계성과 폭력성의 함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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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는 2016년 제42회 LA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제81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2017년 제74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및 외국어 영화상, 제51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쓴 수작으로, 감독은 폴 버호벤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작가 필립 드지앙(Philippe Djian)의 2012년 앵테랄리에상 수상작 "Oh..."를 원작으로 한다.





폴 버호벤은 1938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감독, TV연출가, 극작가이다. 이번에 엘르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하기 전까지 상복은 적은 편이다. 그는 1938년 선생님인 아버지와 모자 만드는 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슬릭케비어에서 살았다. 그의 가족은 1943년 헤이그로 이사했는데,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로 그의 집 근처에 하필 V1, V2 로켓 발사대를 장비한 독일군 기지가 있었다.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이웃집이 전파되고 그의 부모도 거의 죽을 뻔 했다. 그는 이때를 불타는 집들, 길거리에 나뒹구는 시체, 폭력이 계속되는 불안과 공포의 시기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아버지는 헤이그의 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그도 이 학교를 다니며 아버지와 미국 영화를 보러다니곤 했다. 그는 만화도 좋아하여 스스로 더 킬러라는 만화도 발표하였는데, 주로 복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1955년 라이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복수전공하였다. 그는 대학 시절 네델란드 필름 아카데미의 강의도 수강했다.

이러한 그의 어린시절이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듯 하다. 그의 작품 전체에 녹아흐르는 인간의 폭력성과 복수라는 테마, 그리고 로보캅 제작을 가능하게 했던 만화와 SF적 감각은 오랜 시간 그가 쌓아온 기억과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폴 버호겐은 1960년 첫 영화 A Lizzard Too Much를 발표했고, 1963년까지 3편의 단편영화를 더 제작했다. 이후 해군에 입대, 1965년 The Royal Dutch Marine Corps라는 해군 다큐멘터리를 찍어 프랑스 골든 썬 어워드에서 군대영화상을 수상했다. 1967년 결혼하여 두 딸이 있다.


그는 제대 후 TV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만들며 데뷔했다. 1971년 영화에 데뷔했으나 주목 받지 못하다가, 1973년 Turkish Delight로 성공 반열에 들어선다. 이 영화는 당시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는데, 예술가와 어린 여성의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그는 1979년 2차 세계대전 중 활약한 네델란드 저항군의 실화를 그린 Soldier of Orange로 LA 비평가 협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되며 미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5년 더 큰 기회를 찾아 미국에 진출한 그는 아그네스의 피(Flesh and Blood)를 제작하여 흥행에 실패하지만, 절치부심 끝에 드디어 1987년 로보캅을 발표, 큰 성공을 거둔다.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영화는 극작가인 에드워드 노이마이어(Edward Neumeier)가 친구와 같이 가다 우연히 블레이드러너의 포스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쓴 후 다시 또 우연히 헐리웃 유력가를 공항에서 만나 제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원래 TV시리즈 V로 유명해진 Kenneth Johnson이 감독직 제안을 받았으나 그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아 교체되었고, 폴 버호벤 역시 대본을 보고 감독직 수락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대본을 자세히 본 아내의 설득으로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위 사진과 같이 미장센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챙기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데, 이런 분위기는 다음 작품인 1990년의 토탈 리콜(Total Recall)로도 이어지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토탈 리콜은 당대 최고의 음향효과와 특수효과를 적용해 1991년 아카데미 시각효과부문 특별업적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그는 로보캅 후속편 등의 SF 제작에서 벗어나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 쇼걸(Showgirls, 1995)을 발표하는데, 둘 다 흥행에는 성공하지만 쇼걸로 인해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아마 이것이 다음 작품인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 1997)와 할로우맨(Hollow Man, 2000) 등 SF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두 작품 역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에 노미네이트되지만 감독으로서의 명성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6년 네델란드로 복귀한 그는 블랙북(Black Book, 2006)을 제작, 네델란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감독상을 포함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영웅의 귀환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이후 별다른 작품활동이 없던 그는 드디어 엘르로 돌아와 전세계 무려 60여개 상을 휩쓸며 그의 작품성을 재조명받게 된다.

그는 미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았던 사람이다. 로보캅, 토탈 리콜에서 보여준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원초적 본능, 쇼걸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본 엘르에서는 뇌리에 남아있던 원초적 본능과 쇼걸의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을만큼 그는 상업영화의 색깔을 완전히 지운 듯 하다. 그것이 헐리웃을 떠난 이유일까?

근래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 2016)에서 보았던, 현실에서 대하는 듯한 남자주인공들의 남자다운(?) 무표정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엘르에서 이자벨 위페르가 보여준 복합적 인간심리를 표출하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는데, 이것은 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폴 버호벤 감독이 작품에 불어넣은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헐리웃 영화로는 넘보기 어려운 이러한 연출은 인간의 심리와 사회성에 관한 함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원작의 탁월함이 있겠지만, 이것을 각본으로 옮기고 화면으로 연출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있지만 내 아티스트로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 작품은 나를 실존주의 모드로 밀어넣는다. 예술가로서 나는 가능한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잘 요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SF적이고 상업적인 영화들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로보캅과 토탈 리콜에서 보여준 세계관은 충분히 무거웠고 한편으로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있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엘르는 인간이 사회에서 맺고 살아가는 관계와 거기에서 표출되거나 표출되지 못하는 욕망,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고있는 폭력성을 무게감 있게 다룬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거기엔 여타 영화에서 그렸던 낭만과 로맨스를 찾아볼 수 없다. 등장인물 모두가 삶에 부딪히고 있다. 흑백론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영화는 매 씬마다 보여주며 인물들이 저마다 맞딱드리는 삶의 무게를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폭력적인 상황들, 인간이 내면에 갖고 있는 욕망,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일과 돈,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영화는 잔잔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게 순순히 나타낸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그 욕망과 사회와 관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극단적이고 절망적이지 않으나 끊임없이 관계의 개선과 나의 존재감을 충족시키는 선택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결혼이 아닌 결합이라는 제도를 인정하고 학생때 선생님과 결혼한 사실과 상관 없이 일 잘할 것 같은 총리를 선출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제도와 인식을 가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관점으로 보면 병맛 영화일 수도 있다. 약간의 스포를 하면, 우리 표현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성적으로 매우 개방적으로, 주인공이 친구의 남편, 이웃의 남편과 관계를 갖지만 그 친구,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필자는 재미있게 보았다. 관람객 평가가 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되어 있는데, 필자도 보는 내내 그랬다. 다음 글에서는 주인공 이자벨 위페르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나가 보겠다.

[문화] - [영화] 엘르 리뷰 - 현실적 무표정연기의 끝판왕이 보여주는 인간의 관계성과 폭력성의 함수 (2)


[참고]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1220

폴 버호벤 감독 이력,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8F%B4%EB%B2%84%ED%98%B8%EB%B2%A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5767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aul_Verho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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