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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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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5월 갑자기 많은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시장의 급락이 곧 시작될 수 있다. 한국시간으로 오늘 새벽 마이클 버리가 또 하나의 트윗을 날렸다. 2008년 미국시장의 버블 붕괴를 예측해 유명해진 그가 갑자기 그때 일을 상기시키며 마치 비행기 사고를 보는 것 같았고, 빅쇼트로 커다란 이익을 챙겼던 그 자신도 마음 아팠고 돈은 벌었지만 기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마이클 버리는 트윗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해도 썼다 바로 지우는데, 이번달에 유달리 많은 트윗을 남겼다. 5월 3일에는 S&P 기준으로 직전 저점을 붕괴시켰던 사례들을 언급하며, 현재 직전 저점인 2021년 3월의 판데믹으로 인한 저점보다 15% 낮은 1862가 다음 저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아래 S&P 월봉에서 주황색선으로 마이클 버리가 언급한 지점을 표시해 놓았다. 같은 날인 5월 3일 데드캣 바운스에 속지 말라는 경..
외국인 3월에만 코스피 5조 매도, 미국은 윤석열 패싱...위대한 윤석열 당선 후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조짐들 조선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믿는 윤석열이 이상하게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진영에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러시아 공략 이후 신질서 구축을 위해 열일하고 있는 미국 민주당 정권에서 철저히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브레튼우즈체제를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와 금융체제를 만들어 소련을 붕괴시킨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들이 다시 등장한 이때 한국이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조짐들이 보인다. 우선 대선 이후 외국인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중이다. 위대한 윤석열이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이끌거라 자부하는 조선사람들을 뒤로 하고 돈냄새를 맡지 못한 외국인이 떠나는 것이다. 당연한게 선제타격 운운하며 지정학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작태는 조선사람들 기분은..
한국 경제, 정점을 찍었나 코스피는 지난 1월 3266을 기어이 넘어 3316을 찍고 하락 중이다. 그러나 주봉에서조차 RSI는 완전한 다이버전스를 보여주고 있고, 일목균형표도 하락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1/08/827702/ 1806조 가계빚 뇌관·물가 경고음에…美보다 앞서 금리인상 아시아 주요국중 가장 먼저 기준금리 인상 이주열 총재 `빚투` 급제동 "금리 올리면 부채 둔화 효과 늘어난 취약계층 이자부담 재정으로 핀셋 지원해야" 수출호조로 4%성장 자신감 시중 유동성 www.mk.co.kr 한국은행은 연일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표정연기를 하며 오늘 겨우 금리를 0.25% 올렸다. 막대한 돈을 풀어 조선을 완벽한 헬조선으로 만든 주범은 바로 경..
2021년 5월, 운명의 갈림길이 될까 비실비실한 할아버지로만 보였던 바이든 정부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뒤에 두고 연설하는 바이든의 표정에 독기와 자신감이 보이는 이 사진이 지금의 미국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정권 초기부터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여러 경제정책들이 너무나 멋져 보인다. 어제 나스닥은 장중 -2.3%까지 갔다 -1.8%로 마감. 다우는 행잉맨과 다이버전스를 동시에 연출하며 간신히 +0.06%로 마감. 그러나 60분봉으로 보면 완전히 널뛰기를 하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다. 바이든 정권 초기 증시에서 중국에 밀릴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고 있는 것 같지만, 기술주는 더이상 돈 들어올 곳이 없어 크게 밀릴 것 같은 분위기다. 아시아 증시는 한중일 3개 증시가 휴장인 가운데..
어떤 금융문맹국의 21세기형 정책 - 동학개미만의 매수와 공매도 금지 연장이 코스피를 나락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단어는 순진한 개미들에게 붐을 일으켜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고 생각해 왔다. 동학운동은 위대한 조선의 지배계층이 외세인 일본군을 끌어들여 무차별한 양민 학살을 통해 지배권을 곤고히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금치에서 7일 동안 전투가 계속되어 하루에도 4~50 여 차례나 이 고개를 뺏고 빼앗겼으며 종내에는 2만 여 명의 동학농민군 주력이 5백 여 명밖에 남지 않을 만큼 큰 희생을 치렀다. 우금치 계곡과 봉황산 마루는 쓰러진 동학농민군 시체로 하얗게 덮혔고 산밑 시엿골 개천은 여러 날 동안 줄곧 핏물이 홀렀다. 동학농민군은 초반 허술한 조선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일본군의 총탄 아래 궤멸되었다. 기록마저 불분명해 1만이다, 2만이다, 10만이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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